※주의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나랏말싸미
감독 조철현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19.07.24
줄거리
“이깟 문자, 주상 죽고 나면 시체와 함께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아 나라의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
1443, 불굴의 신념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후기
나랏말싸미 영화관에서 본 사람, 나야나... 메가찬스를 이용해서 미리 티켓을 샀는데 이게 웬걸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나랏말싸미를 절대 보러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같은 제목의 글이 얼마나 많던지. 취소도 안되고 언니를 겨우 꼬셔서 갔다 왔다. 가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밤 9시 타임 영화였는데 사람은 한 20명 정도 있었다. 나랏말싸미 관객수는 현재 95만 명(8.17 기준). 95만 명 중 1명이 된 기념으로 나랏말싸미 후기를 적어보겠다.
이 영화는 신미 스님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신미 창제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논란의 이유인데...
실제로 한글 창제는 누가했는가?
1. 세종대왕이 혼자 다 만들었다. (O)
2.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같이 만들었다.
3. 세종대왕이 지시해서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
4. 영화처럼 세종대왕이 외부세력(불교나 기타등등)과 함께 만들었다.
정답은 1번이다.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러 기록에 세종이 100% 혼자 만들었음이 적혀있다. 세종대왕님 진짜 대왕천재...
'한글을 스님이 창제했다.'는 가설은 한 중이 쓴 책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책은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 존재한 책인데 훈민정음이 언급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은 연구 가치가 없어 폐기된 가설일 뿐이다. 원본의 존재도 알 수 없고, 복사본 역시 가짜로 밝혀져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이미 죽은 이 스토리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세종의 천재성을 깎아내리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우려대로 흘러 간다. 한글 창제 영화임에도 신미 스님이 주인공이다. 세종은 클라이언트, 신미는 디자이너다. 신미의 역할이 조력자 수준이 아니라 모든 중요한 결정을 다 그가 한다. 신미의 굳은 심지, 천재성을 그리다보니 세종이 상대적으로 유악하고 무능하게 그려진다.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결말에 세종이 수십 년 살아오는인생동안 이 책(훈민정음) 하나가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자격루가 들었다면 옆에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세종의 업적이 몇 갠데 고작 이것 하나가 남았다니.
영화의 시작 부분에 기본적으로 한글이 불교에서 쓰는 표음문자(산스크리트어)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주장 때문에 조금 자긍심이 꺾이는 측면이 있다... 한글은 목구멍과 입모양을 따서 만들었다고 해례본에 적혀 있는데.. 역사왜곡은 알고 본 거니까 이제 그만 말하겠다.
한글을 만드는 과정이 (허구일지라도) 자세히 나오는 건 재밌었다. ㄱ,ㄴ,ㄷ... 자음과 ㅏ,ㅣ,ㅜ,ㅔ,ㅗ... 모음.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쓰는 글자가 처음 탄생할 때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글자를 만들 당시에 골머리 썩히며 소리를 연구하고 고민했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글은 확실히 기존 글자(한자)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만든 글자라서 그런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양을 갖고 있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한글의 디자인은 어쩜 이리 간결하고 아름다운지. 요즘 유행이 '미니멀' 아닌가? 한글은 군더더기 없이 거의 직선으로 이뤄져서 독특한 모양새를 가졌지 않나. 그 모든 것을 고려한 글자라니 한국인들은 참 복받았다.
이 영화는 한글 창제에 대한 역사적 왜곡을 떠나서 봐도 고증이 잘 된 영화가 아니다. 유교국가인 나라에서 세종과 스님이 독대를 한다. 세종이 인재라면 그의 출신보다 재능을 먼저 보는 아량 넓은 성군이시긴 했지만. 세종이 정말 신분에 열려있는 사람이라 쳐도 그의 아들들까지 아버지이자 왕에게 대드는 스님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봐도 자신의 부모에게 소리치는 중이면 싸움날텐데. 또한 중전과 임금의 관계도 매우 평등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조선시대인데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현대적인 용어가 많이 나온다. 중세언어 '나랏말싸미'가 제목인 영화인데 말이다. '요로에 결석이 생겼다.', '각막에 좋다.' 등 이러한 의학 용어를 사용한다. 1400년대 조선 대단한걸? 그리고 '중전을 탄핵해야 합니다.' 라는 대사도 나온다. 보통 '중전을 폐위해야 한다.' 이렇게 표현을 바꿀텐데 말이다. 새로운 글자를 주제로 한 영화임에도 어휘를 너무 현대적으로 사용했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에 없던 동물 이름이 나온다는 후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신미가 한글을 만들었다.'에 집중한 나머지 한글 이전과 이후의 변화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다는 점이다. 한글이 존재하기 전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과서적인 이야기 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 백성들은 한자가 너무 어려워 글을 읽지 못했대.','양반들은 글자를 자신의 권력처럼 생각해 한글창제를 반대했대.' 이 정도의 이야기 뿐이다. 한글이 없다면 이 영화의 각본은 한자로 쓰였을 것이고, 이 영화를 국민의 절반 정도는 이해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큰 혁신을 제안하는데 모두 바로 조별과제 쯤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며 받아들인다. (신하들 빼고)
집중해서 봤음에도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연기력 짱짱한 배우들을 섭외했지만 맥락없는 스토리에 맥을 못 추린다. 나는 특히 신미 스님이 도입 때부터 왜 저렇게 화가 난 것인지 누가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숭유억불정책이 세종만의 문제도 아닌데. 그리고 중전은 아픈 기색이 없다 갑자기 궁을 나가서 사망한다. 세종이랑 갑자기 왜 사이가 나빠진건지 모르겠다.
극의 기승전결을 위해 갑작스러운 위기를 준 것 같다. 세종의 건강도 악화되는데 이는 실록에 의하면 어느정도 사실이다. 한글 창제가 세종의 임기 끝자락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실 기반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들어간 장면은 아닐 것이다. 그저 세종의 공백기간동안 신미가 한글을 완성해야 멋지기 때문에 나온 장면이라 보인다...
결말
훈민정음 서문이 108글자인 이유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108'이란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미는 한글 창제의 공을 세종에게 돌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중전은 사실 불교신자였다는 언급과 함께 중전의 제사를 불교식으로 지낸다. 그러나 역사 고증이 덜 된 듯한 모습에 영화가 신뢰도를 잃어서 이게 정말 불교식 제례 모습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풍등을 날리면 저기가 산인데 불 나면 어쩌지 살짝 걱정이 됐다. 그리고 갑자기 어린 궁녀로 나왔던 배우가 왠지 상궁이 되어 있어서 조금 신경이 쓰였다.
끝맺음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 특히 대중영화라면 매체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해야 한다. 이 영화를 그대로 흡수해 버릴 사람들도 많지 않겠는가. 심지어 해외에 수출까지 한다는데.
그리고 영화적 상상력이 허용되는 게 옳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재미라도 있었어야 설득력이 생겼을 것이다. (재미가 있었어도 세종이라는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정체성을 건드렸기 때문에 비판을 면할 순 없었겠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신미 창제설을 선택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보인다. 종교적 입지를 탄탄히 하고 싶었다든지, 신미 창제설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다든지 말이다.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속내가 있었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 집순희의 감상 2.0/10.0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던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병들고 약한 세종의 인간적 면모를 그려낸 점과 조선의 불교라는 이색적인 그림을 본 것에 각 1점씩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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