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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의 OTT 탐구/영화

[다큐 추천] 미국 대학의 위기, <더 헌팅 그라운드>

 

※주의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더 헌팅 그라운드  

 

 감독  커버 딕

 출연   커버 딕, 에이미지 지링 코프만, 에이미 허디

 개봉  2015

 러닝타임  90분

 


 

 줄거리 

 

성폭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그룹이든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미국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여학생 5명중 1명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특히 대학교내 남성사교클럽의 클럽파티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성폭력사실을 고발해도 학교는 사건이 외부로 밝혀지는 걸 꺼린다. 가해학생이 유명한 운동선수이거나 남성사교클럽의 막대한 기부금, 외부 지원금 때문에 학교는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명예’지키기에 급급하다. 경찰도 사건 조사에 미온적이다. 보호해야할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은 안중에도 없다.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가해 학생들은 본인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 채 여학생들에게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하나둘 서로를 지지해주고 연대해나가기 시작한다. 학교를 대상으로 법정대응을 계획하고 이슈화하기 위해 노력해나간다.
 
 [제19회 제주여성영화제]

 후기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 브라운... 이름만 들어도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이다. 이러한 미국 내 명문 대학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화려한 교수진, 최상의 시설, 수준 높은 학생들, 그들이 졸업하고 갖게 될 사회적 영향력.’ 한 마디로, 미국 명문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찬란한 미래’를 선물 받는 것과 같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미국 내 명문 대학들은 한 가지 고질병을 갖고 있다.


바로 ‘성폭행 문화’다. 미국 대학의 성범죄는 문화에 가깝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성폭행을 하는 관습은 매우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그 피해 숫자도 매우 크다. 통계적으로 보면, 미국의 여대생의 16% 이상이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그중 단, 5%만이 신고를 한다. 신고가 접수될 경우,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과연 어떤 조치를 할까? 
     
대학은 그들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선 대학에 어떤 문제도 없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대학들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쪽 보단 애초에 문제가 없던 척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대학은 성범죄 신고 사실을 축소 발표하고, 교내 사교클럽의 고질적인 성범죄 관습을 묵인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찬란한 미래’를 선물하지 않는다. 학교는 그저 성범죄자들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약육강식의 세계헌팅그라운드(사냥터)일 뿐이다

 


포인트 <1> 강렬한 도입부 - ‘WELCOME(환영)’

 

 

입시 결과를 함께 확인하는 가족들.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의 달콤함을 양껏 느끼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다큐의 시작부에 간절히 바라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을 기록한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대학 입학이란, 인생에서 가장 설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의 첫 출발선과 같은 곳이다. 입학할 대학의 모습이 보인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선배들의 성공담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입학생들은 곧 ‘나에게도 그런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캠퍼스에 첫 발을 내딛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강렬하다. 입시 결과를 확인할 때의 두근거림, 합격 발표를 내 눈으로 보았을 때의 행복감, 입학식 연설을 들을 때 느꼈던 자부심, 가족들과 떨어져 새로운 환경으로 갈 때의 기분 좋은 긴장감. 그리고 강간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피해자. 이 장면을 볼 때,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사진 속 그녀가 너무나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도입부는 대비 효과를 통해 성범죄의 가혹함을 표현했다. 성범죄자들이 앗아간 행복의 크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 다큐멘터리 전체는 볼 수 없어도 도입부만큼은 꼭 봤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도입부이다.

 



   포인트 <2> '풍자'로 전하는 메시지

 

 

성우가 '당신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됐을 때 예상되는 일'이라며 발랄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성폭행범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단 하루 정학, 75달러 벌금입니다. 이것은 웃음을 주려고 지어낸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대학교에서 가해자들에게 내린 처벌입니다. 대학들의 참신한(?) 처벌 방식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성우의 발랄한 목소리도 재미에 한몫을 합니다. 더하여, 대학의 이름(로고)을 각 대학에서 내린 처벌로 자막이 바뀌는 그래픽 효과는 제작진들의 유머감각이 드러납니다.

 

 

모든 대학들이 심각하게(seriosuly, seriously, very seriously!) 이 사건을 다룬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대학들은 피해자 보호보단 가해자 보호에 더 큰 신경을 쓴다. 대학은 교내에 시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 실제로 '졸업 후 퇴학'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내 성범죄자들이 받는 처벌은 그들이 지은 죄질에 비해 한참을 못 미친다. 이 다큐멘터리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도구는 '풍자'다. 미국의 블랙 유머의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포인트 <3> 생존자(survivor)의 이름

 

 

이 다큐멘터리에선 피해자들을 생존자(survivor)로 표현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생존자들의 용기 덕분일 것이다. 끔찍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지금은 멋진 활동가가 되었다. 캠퍼스 내 성범죄 문제는 한 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들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점들을 연결하여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또한, 미국의 법 조항을 공부하며 가해자를 옹호했던 대학들을 고소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생존자들은 주저앉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피해 사실을 이야기한다. 다시 떠올리기 힘든 과거의 상처를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후배들이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는 매년 입학 하는 학생들을 맞이한다. 다르게 말해, 피해 학생이 졸업하는 순간, 대학은 다시금 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 내 성폭행 관습이 문제로 인식된 지는 2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문제 해결의 시초에도 다가가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생존자들은 단체적으로 행동한다. 몇 백년 된 대학을 20살의 대학생이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존자들의 목소리였다. 행동하는 그들이 희망을 만든다. 


 끝맺음 

 

<더 헌팅 그라운드>는 미국의 사례이지만, 대학이 학생들의 권익보다 자신들 밥그릇 채우기에 바쁘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한 의대생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여자 친구를 감금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여자 친구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이유는 고작 “전화 응대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에 재판부는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으면 (가해자가) 학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1200만 원 벌금형을 내렸다. 

  대학교는 피해 학생이 신고를 한 후에도 계속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했다. 게다가, 교수들은 가해 학생을 옹호하고 나섰다. '촉망 받는 아이'의 앞길을 막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촉망받는 아이'는 가해자를 변호할 때 쓰일 말이 아니다. '촉망받던' 다른 이의 인생을 꺾어 버린 가해자들에게 지나친 관대함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대학은 사건을 쉬쉬하기 바쁘고, 이 과정에서 피해 학생이 받는 2차적 피해가 크다. 아무 일도 없던 척한다고, 정말로 아무 일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들은 피해 학생의 교육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주고, 더 이상 대학교가 '헌팅 그라운드(사냥터)'로써 활용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집순희의 감상 7.0/10.0  

 '성폭행'과 '문화'라는 단어가 함께할 수 있는 건지. 처음엔 참 놀랍고 목구멍이 답답해졌다. 아이러니한 일은 이 다큐멘터리를 배급한 회사가 바로 할리우드 거물이자 성범죄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회사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30년간 성폭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외적으로는 이처럼 페미니즘을 옹호했다고 한다. (이것도 할리우드의  '문화'였겠지?)여성에게는 학문을 배우는 대학과 커리어를 쌓는 일터 모두 안전하지 않다. 헌팅 그라운드는 어디에도 있는 법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